

_죽은 나비들의 장례 中

STATUS
힘
체력
지능
관찰력
운
1
2
4
5
3
초일류급
장의사
에라블
멜라

소지품 목록
-검은 나비
그가 기르는 애완동물. 크기는 130mm정도. 종은 제비나비. 여름형.
7월 중순에 불현듯 나타나 그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같은 나비가 계속 오는게 맞는지 긴가민가하다가, 그 점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특별히 이름을 지어준 것은 아닌 모양. 부를 때는 그냥 나비야,하고 부르고는 한다. 나비가 알아듣는지는 확실치 않다.
의사소통은 커녕 길이 든건지 아닌지도 확실치 않지만, 그가 가는 곳은 언제나 따라다니고 그가 종종 먹이도 챙겨주니 어찌되었든 애완동물이라고 칠 수 있겠다. 그의 어깨나 손 끝에 앉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꽃이 핀 화분
양 손 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크기. 자기로 되어있다. 안에 핀 꽃은 용담로열블루. 세 뿌리정도 심겨져있는듯 하다.
나비의 먹이로 들고왔다. 평소에는 알아서 잘 먹고다니겠거니 싶어 매번 챙기지는 않지만, 바다 한가운데로 가는 크루즈다보니 나비가 스스로 먹이를 구하는 것은 어렵겠다 싶어 챙겨온 모양.
-수면유도제
흰 색 알약. 약 30정. 알약통에 담겨져있다.
꽤 강한 편으로, 이와 같은 약에 내성이 없는 이가 섭취하면 사흘을 내리 잘 수 있다.
-은 반지
두껍지 않은 크기의 반지. 목에 거는 용도인지 줄이 달려있다.
목에 걸고 셔츠 안에 넣고다녀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초일류급 장의사]
애도하는 마음에는 한가닥의 경박스러움조차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듯 엄숙하다.
한 자루는 죽은 자를 위한 비통을, 한 자루는 산 자에 대한 앞선 애도를 상징한다. _죽은 나비들의 장례 中
장의사. 죽은 이를 보다 아름답고 깨끗하며 편안하게 보내드리기 위한 의식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자.
그는 시신에게 수의를 입히는 것부터, 시신위생처리 능력, 장례절차와 장례 및 묘지에 대한 행정절차까지, 죽은 이를 맞이하는 것부터 안식에 들게 하는 마지막 단계까지 완벽하게 진행할 수 있는 재능을 갖췄다.
그는 어떤 상태의 시신이든,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든, 어떤 죽음을 맞이했든 개의치 않고 죽음 이후의 세상으로 안내한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그저 사무적인 절차가 아닌, 보는 이마저도 죽은 자와 삶의 마지막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엄숙함이 담겨있다. 소리없이, 군더더기 없이 움직이는 손짓과 그의 움직임에 따라 하늘거리는 가운자락을 보고 사람들은 그를 검은 나비라고 부르고는 한다.
그의 특별한 점은, 죽은 이의 유족들이 정신적으로도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것을 돕는 것이다. 죽음과 죽은 이에게 집착하거나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게, 담담한 마음과 일상 생활을 되찾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 이것까지가 누군가의 죽음을 갈무리 짓는 것에 포함된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있다.
인지도 : ★★★☆☆
출석률 : ☆☆☆★★

"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나. "
탄생화, 에리카. 고독.
탄생석, 다이옵테스. 재회.
ㅣ침착한ㅣ덤덤한ㅣ무뎌진ㅣ두려움이 없는ㅣ
그는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다. 무언가 일이 일어나면 조용히, 상황을 지켜본다.
언제나 시체의 곁에서, 새벽까지 싸늘한 시체안치소와 묘지를 들락날락하는 그에게 죽음이나 귀신에 대한 두려움은 무뎌졌고, 이에 따라 다른 일에 있어서도 크게 겁먹거나 놀라지 않는다. 짙은 속눈썹이 가린 눈을 조금 크게 떴다가, 도로 돌아오는 것 뿐. 같은 맥락으로 어떤 모습의 시신이라도 그는 눈 깜짝하지 않고 죽은 이에게 애도를 표하고, 시신을 수습하려 들 것이다. 아무리 잔인하게 죽은 시체라도 그는 역겨워하거나 비위가 상하지 않는다.
감정에 있어서도 그렇다. 그는 이미 무뎌져, 다른 이의 감정에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아니, 그 속도가 느린 것에 가깝다. 죽음은 멈춘 시간이다. 그는 꺼져가는 삶을 살리기 위해 다급하게 움직이기보다는 식어가는 몸과 더이상 흐르지 않는 시간을 죽은 이와 함께하는 일을 한다. 이것이 그에게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상대가 격한 감정을 보여도 그에 공감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다가, 서서히 그것을 곱씹으며 점점 그 감정에 물들어간다. 아주 느리게. 때문에, 그는 감정에 있어서 그것을 공감해줄 시기를 놓치는 일이 다분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후회도 쓰디 쓸테지.
그가 유일하게 두려워 하는 것은 성급하게 무언가를 하려다가 모든 것을 망치는 것이다.
그는 누군가의 마지막을 마무리 짓는 것이라는 일을 한다는 것에 부담을 가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ㅣ여유로운ㅣ무심한ㅣ적극적이지 않은ㅣ
그가 뛰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그에게 급한 일은 없다. 죽은 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 뿐이니. 바쁘게 살아왔을 한 인생, 죽은 후에도 서두를 이유는 없지 않은가.
걷는 속도는 빠르지 않고, 행동과 손짓은 가볍고 섬세하다. 마치 나비 날갯짓처럼. 성격이 급한 이들이 보면 답답해서 몇 대 때리고싶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주변 이들의 반응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많은 이들의 죽음을 본 만큼, 자신의 삶을 돌이켜 생각했던 적이 많았고, 그 만큼 자신이 하고싶은 대로 살 것이라고 다짐 했던 일들이 종종 있어왔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것이다.
죽음은 어디에든 있다. 언제 자신을 찾아올지 모른다. 그러니, 그 전에, 조금이라도 더 자신으로서 사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무언가를 함께 해야할 때도 그런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무언가 일손이 필요할 때, 그가 자처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가 서있는 위치는 무리의 뒷부분이며, 눈길이 닿지 않는 곳이다. 어두운 옷 탓에 더욱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가 일을 하는 것은 누군가가 죽었을 때. 이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별로 반갑지 않는 일이다. 그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일을 하는 것을 기피하는 성향이 있다. 그는 종종, 자신의 행동과 누군가의 죽음을 은연중에 연관지어 생각하고는 한다.
ㅣ혼돈중립ㅣ
그에게는 별달리 선악을 따질만한 신념이나 기준이 없다. 죽음마저도 그에게는 그저 일상일 뿐이다.
그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자신이 끌리는 대로 행동을 한다. 그것이 누구에게 이득이나 해가 될지에 대한 계산은 뒤로 미뤄놓을때도 있다. 그의 행동이 '선한' 행동일 수도, '악한' 행동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는 그것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Personality
[과거사]
그의 부모는 보육원의 원장이었다. 어린 생명들이 뛰놀고 가르침받는 곳. 삶과 활기가 흘러넘치는. 그런 곳에서 기쁘게 일하는 만큼, 그들은 그의 재능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깨달았을때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그가 자라면 보육원을 물려줄 생각이었다. 장의사의 재능을 가진 보육원 원장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것을 넘어서서 기이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그들은 그가 15세가 될 때 까지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죽음보다는 탄생에, 애도보다는 축복에 어울리는 아이일거라고 믿었지만, 그는 그들의 믿음을 배신할 수 밖에 없었다. 재능이란 운명이니까. 불나방이 달을 쫓듯 그는 자신에게 있어 더욱 밝은 길에 걸음을 내딛었다. 그들은 점점 그의 존재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외삼촌의 손에 넘겨졌다. 외삼촌은 장의사였다. 특별히 재능이랄 것도 없고, 돈을 잘 버는 것도 아닌 그냥, 평범한 장의사.
둘은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다. 함께 생활하는 가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침묵 너머로 느껴지는 것은 부정이 아닌 그저 공존이었다. 그가 재능을 더욱 빠르게 피워낼 수 있었던 것은 외삼촌의 일을 거들었던 덕분이었다. 그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거나 또래 아이들과 노는 것보다는 외삼촌의 곁에서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에게는 그것이 더 반가운 일이었다.
그리고, 외삼촌에게 죽음이 찾아온 것은 중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이었다. 눈이 쌓인 집 앞 계단에서 미끄러져 굴렀고, 그 상태로 방치되어 저체온증으로 맞이한 죽음이었다. 외삼촌의 장례는 그가 총괄한 첫 장례식이었다. 외삼촌은 가족들과 연이 끊긴 사람이었다. 그처럼. 외삼촌의 곁에 있어줄 수 있는 것은 그 혼자였다. 장례를 위해 쓰이는 돈도 그리 크지 않았다. 외삼촌과 그가 함께 하던 것처럼, 그가 홀로 외삼촌의 마지막을 마무리지으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외삼촌의 시신을 앞에 두고 그는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았다. 그가 반가워했던 장의사의 일은 누군가의 죽음이며, 큰 슬픔이라고. 그는 그 혼란를 두고두고 곱씹으며 느리게 일을 진행했다. 외삼촌의 장례는 매우 길었다. 그는 아마, 이 시점부터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일하는 것이 기쁜 일이 아니며, 적게 일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는 장례를 진행할 때 유족들에게 죽음을 수용할 수 있게 돕는다. 심리적, 정서적으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죽은 이를 떠나보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들에게 건네는 말은 사실, 외삼촌의 죽음 당시 그가 누군가에게 듣고싶었던 말이었을지도 모른다.